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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시베리아 횡단열차 3 - 화장실/샤워실

여행/해외 여행기

by 구리개 2019. 10. 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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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선택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아닐까?

 

시베리아 열차의 흉흉한 소문들..

용변을 보고 내리면 변기 바닥이 열리면서 모든 걸 기찻길에 내려놓는다더라,

그래서 핸드폰을 변기에 떨어뜨리면(근데 이게 흔한 일인가?) 절대 찾을 수 없다더라

화장실 바닥이 몹쓸 것으로(??) 가득한다더라 등등

 

수많은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였지만 적어도 내가 탄 열차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002번 기차는 다행히(?) 한때 나의 것이었던 아이들을 기찻길로 바로 떨어지지도 않았고 핸드폰도 무사하다. 애석하게도 화장실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없는데, 아쉬운 마음에 그림으로 대신하련다.

 

 

진짜 이렇게 생겼다.

 

 

 

자그마한 세면대와 변기, 작은 창문이 있다. 지금 이 그림을 보면 저게 뭐야 싶겠지만 실제 본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 극사실주의 그림인 것을 바로 알아볼 테지.

 

저곳에서 머리도 감을 수 있는데 샤워기나 이런 건 없다. 그럼 샤워기 없이 어떻게 머리를 감았을까?

 

 


 

자급자족 머리 감기

준비물: 젓가락, 병뚜껑

 

지지리 궁상인 거 나도 잘 알고 있다.

 

 

 

기차 탑승 전, 숙소에서 달군 젓가락으로 PT 병뚜껑에 구멍을 송송 뚫어 기차에는 뚜껑만 들고 탔다. 그런 다음 다 마신 생수병에 뚜껑만 바꿔서 나만의 휴대용 샤워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꼭 머리를 감아야 해?라고 하신다면 감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내 앞의 아주머니는 머리를 감지 않고 7일내내 연신 빗질만을 하셨다.

 

 

 

 

횡단열차가 제공하는 샤워시설 이용하기

 

그렇게 휴대용 샤워기와 정을 쌓고 있던 중 할 일 없이 열차를 휘적거리던 내 눈에 이 포스터가 들어왔다.

 

샤워실을 제공한다는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불이 나게 인터넷이 연결되는 정류장에서 번역기를 돌렸고 이것은 바로 150루블만 내면 샤워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슴 벅찬 광고 글이었던 것이다.

 

기차 승무원에게 샤워를 하고 싶다고 몸짓 발짓하면 언제 다시 오라고 번역기를 돌려서 보여준다. 그럼 그 시간에 맞게 샤워 용품을 싸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샤워실

 

 

 

대략 이런 느낌이다. 평소라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샤워를 해! 했을 텐데 허허벌판을 횡단 중에 이곳을 맞이하니 6성급 호텔의 샤워실이라도 본 것처럼 감격에 겨워 연신 감탄만 내뱉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기특했다. 너는 어떻게 이런 걸 잘 발견하니??

 

샤워실의 제한 시간이 있을 텐데 승무원은 '얼마든지 오랫동안 사용해도 돼'라고 번역 글을 보여 줬고 나는 대륙인의 배려에 감동할 때 즈음...

 

 

 

....아무리 오래 씻고 싶어도 씻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겠더라.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가장 따뜻한 건 나였다.

찬물도 그냥 찬물이 아니라 송곳같이 차가운 찬물이 머리부터 온몸을 때리니 온도 체크도 안 하고 깨벗은 상태로 샴푸를 머리에 올린 내가 너무 미워졌다(다시 말하지만 시베리아 열차에 몸을 싣는 순간 자기 자신을 향한 희로애락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내 휴대용 샤워기가 그리웠다.

 

발을 동동 구르고 으헣헣 앓는 소리를 하며 체감상 영겁의 시간이 지난 후(그래봤자 10분) 샤워를 겨우 마칠 수 있었고 두 번 다시는 샤워실로 머리조차 두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며 서둘러 열차 칸에 돌아왔다.

 

그다음 나머지 남은 날들은 휴대용 샤워기와 함께했다나 뭐라나.

 


 

한 줄 결론: 안 씻을 수 있으면 안 씻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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