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7일간 혼자 탑승했었다.
친구와 함께라면 혹은 다른 한국인이 있다면 여행은 덜 지루해질 수 있을 테지만 내가 탑승한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은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여정이었다. 심지어 동양인도 한 명도 없었다. 전부 러시아인들뿐..
시베리아 열차 여행을 준비하면서 참고했던 대부분의 블로거분들도 여행 전에 포스팅을 한 내용이라 실제 상황에서 필요한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이로 인해 오는 괴리감으로 여행 동안 불편을 겪기도 했다.
하여 한국인, 동양인 없이 여자 혼자 떠났던 시베리아 열차에서 있었더라면 좋았을 법한 준비물 위주로 준비해 보았다.
준비물: 두터운 양말, 반팔, 카디건, 얇은 담요 등 사계절을 아우르는 코디 필요.
(기본적으로 침구가 제공되지만 추운 지방을 지날 때에는 한기로 인해 잠을 설치기 일쑤. 반대로 더운 지방을 지날 때에는 반팔을 착용하자)
러시아는 광활하다. 이게 어떤 의미이냐면 모스크바에서 여름으로 시작하여 중반부쯤 기온이 떨어지면서 가을을 맞보고 급기야 영하로 내려감으로써 눈보라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다 이내 잦아들며 나무가 푸르러지고 마지막으로 늦여름인 블라디 보스토크를 맞이하며 여행은 끝이 난다.
아래는 24도로 시작하여 1도가 되고 눈이 내리다가 해가 쨍쨍해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참고로 이때는 9월이다.
실제로 이 장면을 목격하면 무슨 일인가 싶다. 실시간으로 인스타에도 올리고 싶고 친구와 가족에게 자랑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왜냐고?
준비물: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멀미 나지 않고 할 수 있는 소일거리. 뭐든 자기 취향에 맞추자.
드론이 택배를 나르고 AI가 오늘 입을 코디를 추천하며 자율주행 차가 개발되는 이 시점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7일 중 6일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준비물이 복잡한 머리인 이유는 여기서 할 게 멍 때리는 거밖에 없다. 한결 맑은 머리로 기차에 내릴 수 있다.
간혹 가다가 영화를 노트북에 담아 가지고 가시는 분이 많은데 나는 노트북이 있음에도 사람을 믿지 못하여 한 번도 꺼내 놓은 적이 없다. 또 계속 흔들리는 기차에서 책을 보자니 멀미가 나는 듯하여 몇 장 읽지 못하고 덮어 버렸다. 화장실 갈 때에나 자리를 비울 때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아이패드 같은 기기에 영화를 담아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차를 탔을 때에는 이미 늦었지 뭐. 어떻게 이렇게 흔들리는데 책을 읽는 거야??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 구경 또는 창밖 구경이 전부였고 이때 나는 기차 여행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와 같이 평소에도 안 할 일을 마치 기차여행을 떠나면 할 것 같다거나 하는 기분으로 짐을 꾸리지 말자. 자신이 평소에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가져가는 것이 실패 확률이 낮다.
그러면 러시아인들과 놀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왜냐고?
준비물: 러시아 회화 책
누가 요즘 책을 가지고 다녀~! 파파고, 구글 번역기가 있잖아~~라고 할 수도 있다.
.... 그것은 우리가 인터넷에 연결되었을 때 한정이란 말이다ㅜㅜ
당신은 환상이 있을 것이다. 현지인들과 하하 호호 즐겁게 노는 모습. 실제로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보면 세상 신나 보인다. 누구와 그림을 그렸고 친구를 했고.. 얘기를 했고.. 뭐 했고..
물론 나도 기차에서 정말 좋은 러시아 분들을 만났다. 7일 내내 나와 함께 마주 보고 앉아 먹을 것을 나눠 먹던 앞자리 아주머니, 내가 밤에 정차역에서 뭘 사 먹으러 갈 때마다 걱정되어 문 앞에서 날 기다려 준 러시아 군인 동생, 심 카드가 되지 않아 쩔쩔매고 있을 때 도와주려고 같이 돌아다닌 위층 러시아 아저씨 등등.
그렇지만 일단 말이 통하지 않으니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없었고 보디랭귀지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영어로 말해도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그래서 러시아 회화책을 가지고 오지 않았음을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다.
친구가 되고 싶은가? 그럼 러시아 회화 책. 정말 추천한다.
준비물: 컵라면, 생수, 차, 커피 등 각종 먹을거리 잔뜩
7일은 긴 시간이다. 7일 동안 먹을 20끼를 준비해야 하는데 다행히도 중간중간 역에 정차하는 동안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탑승 전에 두둑하게 챙겨 가는 것이 좋다.
뜨거운 물은 정수기에서 받을 수 있으나 찬물 정수기는 없으므로 생수는 필수. 러시아에는 한국 도시락 컵라면이 많이 있으므로 잔뜩 사서 쟁여 놓는 것도 좋다. 컵밥도 너무 추천!!
간혹 내가 먹는 음식이 너무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어 먹지 못할 수 있는데, 신경이 쓰인다면 하루쯤 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뭘 먹나 보고 얼추 그에 맞춰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된장 비빔 컵밥과 김치가 있었지만 그건 먹지 않았다.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말이다. 뭐 그렇게 눈치를 봐?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공동생활에는 어느 정도 기본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렇게 했지만 각자 스타일에 맞춰 참고만 하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도시락은 얼큰하니 빨간색 도시락이 맛있었다.
기차 안에서 먹을 것을 팔기도 하지만 비싸다.
Tip)
기차 내 직원분께 컵을 달라고 하면 공짜로 컵과 티스푼을 내어준다. 동시에 컵 판매 영업에 돌입하는데 이때 사고 싶으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No,라고 말하면 된다.
참고) 정차 시간표 체크
기차를 타게 되면 아래 정차 시간표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
002번 기차 기준 모스크바 - 블라디 보스토크 구간의 정차 시간표이다. 짧게는 2분, 길게는 30분 정도 정차하니 잘 참고하여 간식을 사러 가면 되겠다.
준비물: 세면도구, 수건 등
기차를 타다 보면 가장 걱정되는 게 화장실일 것이다. 시베리아 열차에서 용변을 보고 내리면 기찻길로 바로 떨어진다던데 사실이에요?라는 질문도 많고 일주일 동안 머리 못 감아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씻을 수 있다. 어떻게?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준비물: 멀티탭, 작은 가방, 비닐봉지, 이어 플러그, 안대, 슬리퍼
멀티탭: 테이블 아랫부분에 플러그를 꽂을 수 있게 되어있다. 멀티탭으로 연결해서 사용하면 편하다. 플러그가 두 개밖에 없기 때문에 연결하여 위 침대 분과 함께 사용하면 된다.
작은 가방: 밖에 나갈 때나 샤워하러 갈 때 들고 갈 작은 가방이 있으면 편하다.
비닐봉지: 여건 상 빨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비닐봉지에 빨랫감을 보관하면 청결하게 유지 가능! 또한 쓰레기통 용으로 쓰면 자주 쓰레기를 버리러 가지 않아도 된다.
이어 플러그, 안대: 거의 60명 가까이한 칸에 탑승하게 되니 코 고는 소리며 움직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칠 수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이어 플러그를 준비하자. 또한 계속해서 바뀌는 시차로 인해 잠드는 시간이 왔다 갔다 하니 안대도 준비하면 좋다.
슬리퍼: 천보다는 고무로 된 슬리퍼가 화장실과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편하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는데 추가할 내용이 있으면 간간이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궁금한 점은 댓글로 남겨 주시면 확인해서 답변 남겨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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